바울의 회심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그의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만족스럽고 열성적인 유대인이었는데, 예수가 인간 궁지에 대한 해답이라는 그의 새로운 신앙은 그로 하여금 지금까지 그를 만족시켜 왔던 유대교 안에서 부적합함을 발견하게 했다. / 「사도바울의 기독교」 p.47

by wonwoo | 2007/10/25 19:44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개신교는 어떻게 증오의 대상이 됐나

출처: http://ozzyz.egloos.com/3345197

개신교는 어떻게 증오의 대상이 됐나


한국의 주류 개신교와 그들의 복음주의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쫓고 있는지, 혹은 그 이름을 빌어 다른 무엇을 팔아 치우고 있는지 신중하게 곱씹어볼 일이다. 특히 근 한 달 동안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개신교를 향한 대중의 증오심을 복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주류 개신교를 둘러싼 잡음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초래한 두 가지 사건이 소비되는 과정에는 ‘개신교 혐오’라는 코드가 공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와 아프간 피랍사태 이야기다.

시작은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였다. 지난 6월 30일 홈에버와 뉴코아 노조가 공동으로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 농성에 들어가면서 세간의 이목이 (본격적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결국 농성은 7월 20일 당국의 공권력 투입과 더불어 “40분 만에 농성자 168명 전원연행”이라는 뉴스 헤드라인 한 줄을 낳으며 해제되기에 이르렀다. 대중은 노조 편에 섰다. 농성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중의 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의 지지가 노동시장 형평성의 문제로부터 온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킨 건 ‘개신교 기업’ 이랜드의 종교적 폭력성이었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는 논리로 직장 내 반노조 공기를 이끌었다(하지만 성경에는 비정규직도 없다). 강제 진압 전 날 이랜드 전 직원 앞에 전달된 ‘기도내용’(정기적으로 제시된다)에는 “불법파업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노동조합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달란트(여기선 임금을 의미한다)에 불만을 갖지 않는 성실한 종의 소임을 다 하도록” 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사실들이 블로그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전파되면서 심지어 이랜드 그룹 계열사의 상품을 구매하지 말자는 운동까지 벌어졌다. 가치판단의 문제를 떠나서, 일단 보기 드문 일이다. (특히 노동문제에 있어선) 전에 없던 대중의 적극적 사회참여였던 셈이다.

곧바로 아프간 피랍 사건이 터졌다. 7월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아프간 봉사활동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 20여명이 19일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면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주둔 중인 한국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인질 가운데 일부가 끝내 살해당하는 참상까지 빚어졌다.

놀라운 건 상당수 비난의 화살이 정부나 탈레반이 아닌 개신교 자체를 향해있다는 점이다. 고 김선일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부러 거기까지 선교하러 가놓고 이제 와 국가 책임을 운운하냐는 말부터, 개신교 신앙을 권하러 아프간까지 가다니 이슬람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맥락에 대해 어찌 그리 무지할 수 있냐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어떤 네티즌은 피랍된 여성 중 한 명이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미니홈피에 남긴 개인적 소회를 ‘봉사가 아닌 선교하러 간’ 유력한 증거라며, 번역해 탈레반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무료급식 모금 중이던 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에 십자가를 든 채 회개하라고 말하는 한 남자의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가공할만한 증오의 언어가 인터넷을 덮었다. 개신교 문화에 대한 반감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랜드 사태와 닮은꼴이지만, 최소한의 도덕률을 간과할 만큼 훨씬 더 공격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할만한 증오이기도 하다. 주류 개신교의 복음주의 사고관이 지금껏 이룩해온 부조리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무턱대고 파시즘이니 폭력이니 하는 말로 불특정 다수의 분노를 우롱할 일이 아니다. 신의 권능에서 당위성을 찾아 기대는 사람들의 폭력이란 더 없이 위험한 것이다. 절대적인 가치 앞에 반론의 여지란 증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류 개신교는 반공주의, 국가주의 등 극우 이데올로기와 영합하면서 근현대사의 비극에 상당한 역할을 자처해왔다. 특히 회개와 선교의 논리는 문어발식 기업 확장의 개념과 닮아있어서, 한국 내 존재하는 다른 종교들이 같은 배타성을 취했다면 종교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개신교 NGO들이 올해 들어 더욱 열성적으로 벌이고 있는 해외사업에 대해서도 결국 교세확장의 일환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올해가 평양부흥 100주년이라는 시점상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근 10년 간 답보상태인 교세의 위기를 해외활동을 통해 타개해보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증오를 이해하는 것과 지지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주류 개신교를 겨냥한 분노에는 원인과 결과의 맥락이 존재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감정은 다듬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정당한 비판의 대상과, 당연히 돌아와 가족 품에 안겨야 할 사람들의 문제는 분리돼야 한다. 그저 ‘개신교’라는 한마디 단어로 싸잡아 타자화 시킬 만큼 시스템 내부에 문제의식이 전무한 것도 아니다. 속물적 이익관계에 함몰된 주류 개신교의 자성을 주장해온 건 거대 유력 언론이 아니라 ‘뉴스앤조이’같은 기독교 인터넷신문이었다. 종파를 초월하고 낮은 곳으로 돌아와 예수의 목소리를 따르며 민중과 호흡하겠다는 교회도 많다. 그런데 지금 현시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개신교 혐오의 목소리는 이 모든 이해관계를 구별 짓지 않고 한 무더기로 뭉뚱그린다. 결국 증오와 비난의 순환만 남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지적하는 주류 개신교의 복음주의와 별 다를 게 없는 폭력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한 달간 대한민국은 마치 상영시간 내내 변신동작만 계속하고 있는 오토봇을 보듯 스펙터클에 파묻혀버린 형상이다. 분석과 성찰의 과정 없이 늘 현재진행형의 새롭고 거대한 논쟁만이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이 나라가 한 가지 파국에 대처하는 방식이란 늘 회피와 망각의 반복이었다. 그런 식으론 같은 일이 재현됐을 때도 유사한 오류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그 때의 죽음과 이번의 죽음 사이의 상대적 충격만 반감될 뿐이다. 하지만 현명해지는 것과 무감각해지는 것 사이에는, 예수를 본받는 것과 예수를 판매하는 것 만큼의 깊고 너른 차이가 있다.
허지웅 (GQ 9월호)
by wonwoo | 2007/08/21 10:33 | Article | 트랙백 | 덧글(1)





홍세화와 김훈의 대담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209332.html

04151788_20070515.jpg (60.2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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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소설가 김훈씨와 홍세화 기획위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2002년 2월 김훈씨가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대우 사회부 기동팀 취재기자로 입사했으며, 홍세화씨 역시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입사했던 것. 그러니까 두 사람은 ‘입사 동기’인 셈이다. 물론 김훈씨는 2003년 1월 20일자로 사직했고, 홍세화 위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기획위원으로 계속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다. 홍 위원이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진보’에 해당한다면 김훈씨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이로 알려져 있다.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상극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고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둘의 이야기는 활발했고 흥미로웠다. 대담은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시작됐으며 찻집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인사동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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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woo | 2007/08/18 22:32 | Q.T. | 트랙백 | 덧글(0)





종교라는 망상?

[동아광장/윤평중]종교라는 망상?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7-08-08 03:17 | 최종수정 2007-08-08 05:15 기사원문보기
[동아일보]
 

신에 대한 믿음이 한갓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은 주요 종교가 인류 역사에 끼친 해악들을 조목조목 짚어 내면서 종교적 교리들이 어떻게 혹세무민하는지 폭로한다. 신 없는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인간적인 세상일 것이라고 이들은 역설한다.

이런 비판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무고한 민간봉사자들을 납치·살해하면서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일당의 잔인무도함을 보면서 우리는 종교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어떤 종교가 신앙의 미명 아래 사람의 목숨을 도구화할 수 있는가. ‘당신들의 신’은 그렇게 가르치는가.

그러나 탈레반의 저편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이슬람 신자가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원래 ‘이슬람’이라는 이름 자체가 평화라는 말에서 왔다. 그런 이슬람의 신자들이 보기에 탈레반 원리주의자들은 알라신과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정면에서 배반한 광신적 극단주의자들과 다름없다.

아프간 인질사태의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적되는 한국 개신교의 전투적 선교 관행도 교회 밖으로부터의 비판과 교회 안의 자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기독교의 융성이 지나친 팽창주의와 선교 경쟁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지의 문화전통과 현지인들의 정서에 저촉되는 무리수를 범했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알라의 배반자

종합적으로 이번 아프간 사태는 인간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세계 곳곳의 교회와 절, 그리고 모스크 등에서 오늘도 많은 종교인이 믿음을 가꾸면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갈등과 싸움이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종교 자체의 폐쇄성 때문인가, 아니면 종교와는 무관한 다른 이유가 있는가. 또는 아름다운 신앙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인가. 위태로운 중동 정세 속에서 빈발하는 자살폭탄테러를 비난하는 외부 논자들이 암시하듯이 특정 종교 안에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교리가 과연 존재하는가.

강력하고 때로 설득력 있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종교 현상이 위축되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람에게 특유한 궁극적 관심이다. 즉, 인간은 ‘나는 왜 사는가’라고 물으면서 삶의 유한성과 세계 속에 가득 찬 고통에 대해 궁극적 의문을 갖는 존재라는 것이다. 과학은 세계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지만 삶의 비밀 모두를 해명해 주지는 못한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이런 궁극적 관심을 공유하는 한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종교는 사람들이 지니는 이런 의미의 종교적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의 진지한 정신적 관심에 찬물을 끼얹는 제도종교들의 행태는 참된 신앙의 이름으로 비판받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것이 정의와 사랑의 신이 내리는 명령이라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고난과 아픔으로 가득 찬 세상에 신앙의 이름으로 또 다른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는 것이 과연 종교가 할 짓인가.

그러나 특정 종교(예컨대 이슬람교)의 교리 자체가 폭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일부 서양 논객들의 주장은 역사의 복합성을 단순화시킨 궤변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보듯 특정한 지방의 종교가 세계 종교로 승화되어 가는 궤적은 교리의 보편적 호소력과 실천의 관용성이 함께 증대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종교 교리 자체가 폭력을 조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탈레반이나 십자군의 경우에서처럼 종교가 정치싸움이나 권력투쟁과 연결될 때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앙이 동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한국의 종교는 평화 만드는가

돈과 권력을 좇아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논리로부터 한국의 종교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여러 종파가 다투어 화려한 성전을 짓고 천문학적인 신자 수를 자랑하는 만큼 우리 사회는 인간화되고 화평한 곳이 되었는가. 제도종교 바깥의 공간이 점차 합리화되어 가고 투명해지는 것에 비례해 종교 안의 관행들도 변화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종교인이 늘어날 때 종교는 한갓 망상이 아니게 될 것이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by wonwoo | 2007/08/10 00:01 | 트랙백 | 덧글(0)





디시인사이드 종교겔 선언문

어쩌다, 한국교회가 이꼴까지 되었지 -.-


디시인사이드 종교겔 선언문

혹시나 오해가 생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습니다
제가 작성한것도 참여한것도 아닙니다
이곳에 올린기만 한겁니다
퍼가는것은 자유라고 되어있어서요
디시인사이즈 종교겔러리라는 출처와 작성자만 명시하면
퍼가는건 자유라고합니다




이어지는 내용
by wonwoo | 2007/08/01 00:11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아프칸으로 파병갔다 오신 어느 해병대원의 글

아프칸으로 파병갔다 오신 어느 해병대원의 글

정말... 뒷북이긴 하지만 과연 그 멍청이 개신교 선교단이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안봐도 비디오일 글입니다.

출처.... 원 출처는 모르겠고 제가 퍼 온곳은 와우메카 게시판.


2002~3년 아프간 동의 다산부대 경비대 소속 파병자입니다.

해병대로써 경호 임무를 담당했고 육군 분들이 그 땡뼡에서 어깨에 총두르고 삽질하시고 시멘트 바르실때 그분들 보호해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파병 반대 시위도 열리고 침략전쟁이라고 무시들 해댔지만, 우리는 40도가 넘는 날씨 속에서 그 무거운 방탄 조끼에 한국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방탄 블록 집어 넣고 탄조끼 메고 실탄 200발 가까이 탄 조끼에 넣은 상태로 장전을 하고 일을 했고 미군 병력들과 작전에 투입되어 마을을 수색하며 무기들과 폭발물들을 수거 하기도 해봤습니다.

우리야 뭐 주변에 매복 붙어 있거나 경호 임무가 주였지만 육군 공병 부대분들 보고 있자면 안쓰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대는 그곳에서 하루도 안쉬고 건물도 아닌 텐트에서 생활하면서 일하고 경계 근무를 섯습니다.

너희가 상상이나 할수 있냐?

새벽에 자고 있는데 영내 텐트촌으로 로켓포가 날아와 전투기를 부수어 놓고 담장 소초에서 근무서고 있으면 기관총을 난사하고 도망가 버린다.

잘때 샤워 할때 밥먹을 때 항상 장전한 총을 들고 다니면서 오발 사고에 떨어야했고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는 길이 아니면 지뢰때문에 들어갈 엄두도 못냈다. 그런 곳에서 6개월 동안 일하면서 탈레반 정권떄는 구경 도 못했을 2층짜 리 새하얀 학교를 주민들에게 세워주고 유치원도 올려주고 커다란 운동장을 만들고 축구 골대도 세워주었다.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무료 진료를 실시 하였으며 우리 군이 제공하는 진료를 받기 위해 3시간이 넘게 매일매일 차를 타고 오기도 하였다. 만약에 있을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환자들을 일일이 금속 탐지기로 검사를 한후 진료를 하였으며 어린이 날이었던 5월 5일.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어 부대내에 있는 미군 식당에서 3일 내내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미군을 포함한 부대내 연합군들의 개무시를 뒤로 하고 과일이나 음료수들을 훔쳐와 몇 박스를 모아 그들에게 선물도 해주었다.

맨발로 진료 오는 헐벗은 그들에게 각자 본국에서 보급으로 가져온 옷가지나 신발들을 쥐어 주느냐 마지막 한달은 운동화 없이 지내보기도 해봤다.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고 본국에서는 그리들 난리 쳤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그들에게 제대로 된 봉사를 했다고 지금도 믿는다.

그들 또한 적대시 했던 미국과는 달리 우리를 매우 좋아했고 코리아 넘버원을 외쳐댔다. 실제로 주둔중 우리나라와 태국뿐을 제외하고 셀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 정기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었다. 적어도 그 때까지만 해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의 이미지는 최고로 좋았다. 그리고 우리도 봉사라고 갖다 붙일수 있는 무언가를 했다고 믿는다.

얼마전 세계 평화 대축전을 한다고 아프간에 무개념 기독교도들이 몰려 가 기타 치고 띵가거리면서 찬송가 불러대고 아프간 정부의 공식 거부를 받았을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나 또한 6개월 정도 밖에 못 있었기에 그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거기 있던 무개념 기독교도들....무슨 생각으로 갔을까...

그런 행동들이 우리의 무개념 기독교들 과는 다른, 신에 대한 완전 고결함과 절대성을 확신하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그러는지 제대로 알아보고나 갔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당시 내가 파병 갔을때 내가 3기 였고 지금 까지 계속 된걸 따져 보면 수천명의 동의 다산 부대원들이 그 위험속에 노출 되어 수 많은 일들을 지역 주민들에게 해왔다. 너희들 같은 무개념이 이력서에 한줄 써넣으려고 가는 그런 열흘
짜리 단기 선교가 아닌 진짜 목숨걸고 헐벗은 지역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위해 땀흘렸단 말이다.

너네들이 거기가서 봉사를 명목으로 헐벗은 사람들에게 기타 쳐주고 과자 한주먹 주며 자신들의 신을 팔라고 그들을 꼬드기고 있는 그 순간에도 동의 다산부대원들은 너희들 때문에 더 가중된 위협속에서 지금도 묵묵히 봉사를 하고 있단 말이다.

부디 살아서 돌아와라 그리고 그 다음날 22명 다 굴다리로 나와서 기준 잡고 2열 종대로 헤쳐 모여 있어라 싸우기는 싫고 22:1로 대담한번 해보자.너희들의 그 무지하고 이력서에 한줄 채워 넣으려고 봉사라는 탈로 고묘히 위장한 선교 활동으로 인해 궁핍한 생활을 하는 얼마나 많은 아프간 서민들이 도움의 기회를 잃게 될지 말이야...

그곳이 어떤 환경인지 누구보다도 잘알기 떄문에 처음에는 너희들에게 악감정도 없었고 오히려 네티즌과 언론에 휘둘리는 너희들의 무사 귀국을 간절히 바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나는 너희를 포함한 너희들 단체 그리고 너희 식구들의 행동이 더 이상 가만히 있게 하지를 않는구나.

제발 무사귀환해라. 그리고 너희들의 철없는 행동에 책임을 져라.

너희들이 성스러운 신을 팔아 세력을 넓히고 장사짓거리를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간에서는 너희들이 지옥불에 떨어질거라 말하는 무교, 천주교, 불교의 젊은 부대원들이 종교를 떠나 하나가 되어 목숨을 걸고 진정한 봉사를 하고 있다. 

p.s: 얼마전에 아프간에서 폭탄테러로 숨진 고 윤장호 하사를 아는가? 언론에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쟁스트레스로 인한 총기 사고로 아프간 최초 사망한 모 대위를 아는가? 내가 지내던 곳이었다. 고귀한 생명에 존부가 있겠냐만은 고 윤장호 하사와 고 배형규목사의 죽음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었이겠는가.

그리고 굴다리로 나올때 그당시 당장 마실물도 여의치않아 생수 한통에 벌벌 떨었던 칸다하르 애들한테 과자가지고 꼬시면서 찬송가 부르게 했던 동영상 찍은 애들도 데리고 나와라....완젼히 돌았구나...

출처: http://derspitzel.egloos.com/470436

by wonwoo | 2007/08/01 00:09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아프카니스탄에서 사역 중인 한 선교사의 일기

아프카니스탄에서 사역 중인 한 선교사의 일기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746

입력 : 2007년 07월 23일 (월) 18:02:42 / 최종편집 : 2007년 07월 26일 (목) 22:03:06 [조회수 : 4603] 아프간 선교사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23명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가운데, 한국교회의 선교 방식에 대한 비난 여론 또한 인터넷에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뉴스앤조이>에서는 아프간 피랍 사태를 통해 분쟁 지역에서 행하는 인도적 봉사와 선교 방식에 관한 논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긴급 구호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가 이메일로 <뉴스앤조이>에 보낸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제발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라고 호소하는 가족들. 왼쪽부터 이주연 씨의 어머니, 서명화·서경석 남매의 어머니와 아버지. ⓒ 뉴스앤조이 유헌

2007년 7월 20일 아침 6시,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몸살과 오한으로 밤새 잠을 설치다 어렴풋이 든 잠이어서 금방 받지 않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끊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대사관 강 모 영사의 전화였다. 이른 아침에 대사관으로부터 전화라, 심상치 않은 듯하여 곧 전화를 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른 아침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한국인들이 피랍되었다는 정보가 있어서 확인 차 전화 드렸습니다. 단기 방문객들 가운데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곧 전 지역에 확인해 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강 영사와 통화를 마치자 혹 싶어서 칸다하르로 전화를 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시는 지부장이 이날따라 잠에 덜 깨신 듯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문의를 드렸는데, 혹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 한 팀이 오도록 되어 있었는데,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있는 분당샘물교회 단기팀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해결이 된다 해도 그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후폭풍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할 복잡한 문제다.

아프간이 가장 큰 피해자…한국선교 위기관리 능력 떨어져

▲ 탈레반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배형규(42) 목사.

이번 일로 우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아프간스탄이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결과가 나오든 결국 그 내용은 부메랑이 되어 아프가니스탄에 피해를 입힐 것이다. 아프간은 여전히 위험하고 불량 국가라고 전 세계가 한번 더 확인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선교의 위기라는 것이다. 고 김선일 선교사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교회의 위기관리 능력은 제로 수준에 가깝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능력이 아직은 미숙하다. 이번 사태로 인해 선교의 문이 닫힐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단순논리만 붙잡고 무분별하게 뛰어들 세력이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사건이기에 어디서부터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인간적인 솔직한 심정은 당장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 살게 되더라도 더 이상 아무 방문객도 올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입국이 금지된 상태에서 언론사들은 연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해온다. 기독교방송사들도 “선교사님, 선교사님” 하면서 연일 현지상황에 한마디라도 듣고자 목을 맨다. 내가 선교사인지 특파원인지 착각이 든다. 어쩌면 이 기회에 생방송 9뉴스에 이름 석 자라도 올리고 싶은 숨은 공명심 때문일까? 기자도 아니면서 괜히 목에 힘주고 이런저런 개인 평까지 섞어가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장단을 맞추어본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무분별한 한국선교 전략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의 희생양인가? 작년에 연이은 비기독교인들의 엄청난 비난을 단지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이들의 편견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선교의 길은 계속 가야 한다는 헌신만을 다짐하기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가 단순논리로 해석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지난 6년 동안 수많은 단기팀들이 이곳을 지나갔다. 이번 팀보다 더 많은 인원의 단기팀들도 수없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번 팀이 현지 문화에 돌출되는 행동으로 주목받을 짓을 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현지 사정에 밝은 3명의 한국인 선교사의 인솔 하에 이동을 하지 않았던가? 다만 카불-칸다하르 길은 아침에 출발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부분은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는다.

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여러 단기팀 중에 유독 이 팀이 희생양이 되어 시대의 집중을 받고 있는 것은 이 팀이 지녀야 할 십자가일 수밖에 없다. 주님은 그런 아픔을 이 팀에게 허락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인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문제였고 그것이 어쩌다 보니 샘물팀이라 한다면, 이곳의 선교사들은 그동안 안전 불감증 속에 단기팀들을 맞이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 팀만을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앞으로 이 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 누군가는 같이 져주어야 하고 그 누군가에 한국교회 전체가 동참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그런 준비가 안 된 듯하여 더 걱정이 앞선다.

둘째 녀석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늦은 시간이지만 한국인 인질들의 협상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찹찹한 심정으로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는 사무실로 다시 가서 계속 생각했다. 도무지 편한 마음으로 집에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성경은 믿음을 요구하는데 믿음이 자꾸 없어진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울분을 터뜨리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이 안 되는 나의 미천한 영성이 안타깝다.

같은 시간 서구 선교사들은 동방에서 온 믿음의 동료들을 위해 특별 저녁기도회로 모이고 있다. 특별한 관계도 없는 23명의 영혼들을 위해 사건 직후부터 24시간 기도 체인을 만들어 자원하며 기도해주는 그분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늦은 시간에도 누군가는 골방에서 기도의 합주를 아버지께 올려드리고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큰소리 내어 섬긴다



▲ 단체 '개척자들'은 파키스탄 등 분쟁 지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평화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무리한 선교는 지양해야 하지만, 봉사 활동은 기독교인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개척자들의 마음이다. (사진제공 개척자들)

과연 한국선교사들 가운데는 그만한 영적 책임감을 가지고 선교지를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한국교회 가운데는 그만한 영적 성숙함을 가지고 선교에 임하고 있을까? 그런 책임감과 성숙함보다는 열심과 비전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았는가?

120여 년 전 꽁꽁 마음 문이 닫혔던 조선 민족을 섬기기 위해 청춘의 몸으로 왔던 벽안의 선교사들. 때로는 배우자를 잃고, 자식을 잃고, 부모를 조선 땅에 묻으면서도 그저 말없이 수고하고 눈물 훔치던 그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앞 다투어 자랑하는 제2의 선교 파송대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빛도 소리도 없이 섬긴 방면에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소리를 내어 섬기고 있다. 자신의 비전과 욕망조차도 주님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떼를 쓴다.

작년 이맘 즈음 2000명의 인원으로 평화 행진을 하려고 했던 분들에게 묻고 싶다. “안전 문제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음을 장담하셨는데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그들은 가만히 있는 것일까?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이 남아있기에 미안함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행사에 반대하던 아프간 선교사들을 겁쟁이라고 비난했던 단체 대표께서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이 대표로 있는 단체의 선교사들이, 그 단기팀 운영의 전략적인 선교사들이 인솔을 하다가 벌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최소한의 양식이 남아있다면 선교계에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라고… .

그럴 용기가 없다면 타선교 단체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인들이 오늘 석방된다고 하는데 알고 계세요?”라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발언만큼은 안 해주셨으면 한다.

지금은 떠나있지만 10년을 넘게 몸담았던 단체이기에, 이생을 다할 때까지 지울 수 없는 마음 한편의 그리움과 애틋함이 배어있기에 호소한다. 그리고 조국 교회여, 조용히 아버지 앞에 침묵함으로 나아가자. 입을 벌려 악을 쓰지 말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보자. 안 느껴지면 안 느껴지는 그것을 붙잡고 애통해 하자.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회복하자. 우리의 속사람을, 한국교회의 내부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가득 채우자. 그것이 지금 당장 모든 기독교인들이 취해 야 할 최우선적이며 최종적인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협상 시간이 하루 더 연장이 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하루 더 공포 속에서 지낼 팀들이 생각난다. 잘 알고 지내던 자매의 얼굴이 스쳐간다. 우리 아이들이 무척이나 따랐던 자매다.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성장기를 겪으며 자라왔기에 지금의 고난도 잘 참으리라 애써 위안해본다. 어쩌면 협상이 며칠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딸이 내 앞에서 자고 있다.

사랑하는 딸들아!

너희들을 데리고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매서운 겨울강 바람을 건너 오직 믿음으로 아프간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곳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잠들기 전에 너희가 했던 말이 아직 귓전에 남아 있다. “아빠, 우리 정말 떠나야 해요?” 아직은 무엇이라 분명히 말하기 힘들고 그러나 곧 분명히 말할 시간이 오겠지만 아빠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시로 답을 대신한다.

언더우드의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의 일부 중에서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프런티어의 긴장이 진하게 감도는 아프카니스탄에서

by wonwoo | 2007/07/26 23:40 | Healthy Church | 트랙백 | 덧글(0)





기독교 우월주의는 반대한다. 그러나

입력 : 2007년 07월 21일 (토) 12:46:29 / 최종편집 : 2007년 07월 21일 (토) 22:43:28 [조회수 : 2805]방인성

한국 기독 청년들 20여 명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이들을 파견한 분당 샘물교회는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다. 피랍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다. 특히 무분별한 기독교 선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기독교 선교에 대한 비난은 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100% 이슬람교인인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 “예수천당, 불신지옥”식의 구호를 외치며 종교우월주의에 빠져있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모 선교 단체에서 지난 2004년 강행한 예루살렘 대행진이나 2006년 아프간 평화축제 행사는 기독교 우월주의적 선교로 기독교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남의 종교를 존중하는 기본적 자세도 갖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말하며 평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번 기독 청년들의 아프가니스탄 방문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피랍된 청년들은 의대생, 간호사 등 숙련된 전문인이 많고 아프가니스탄 내 병원에서 의료 봉사를 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봉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는 그런 일을 할 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하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갔던 것이다. 세계 여러 단체에서도 순수하게 그들의 필요를 따라 활발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기독교는 참 평화를 위해 로마식의 힘과 무력의 의한 평화가 아니라 사랑과 섬김, 비폭력으로 평화를 위해 몸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교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청년들은 마땅히 전쟁 중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이들의 헌신에 머리를 숙여 존경을 표한다. 물론 조금 더 지혜를 갖고 여행하기에 부적당한 곳이라는 정부의 안내를 염두에 두고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는 환자들과 어린이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 각국 단체에서는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20여 명을 납치한 탈레반 무장 세력의 요구사항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한국군 부대의 철수로 알려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군대를 파병했기 때문에 정부에 대해 적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돈만 많고 정신은 진정한 평화보다는 강대국에 붙어 쩔쩔매는 우리가 문제다. 미국과 부시 대통령이 테러를 근절하고 중동 평화를 위하여 파병을 부탁할 때 적극 찬성하고 집회할 때는 언제인가?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고 부추겼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테러에 맞서 더 큰 폭력을 휘두른다면 테러를 자행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서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안전하기만을 바라는가? 이번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전쟁에 동조한 한국군 파병에 있다.

평화를 위해 봉사하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비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막무가내 식 전도, 일방주의식 선교, 기독교 우월주의는 반대하지만 예수처럼 평화를 위한 섬김과 헌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들의 헌신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통해 평화가 증진될 것이다. 귀한 젊은이들이 무사히 귀환하도록 기도한다.

방인성/ 성터교회 담임목사·<뉴스앤조이> 대표

by wonwoo | 2007/07/23 00:28 | Q.T. | 트랙백 | 덧글(0)





교회 상담 현장에서 들리는 성령의 탄식

교회 상담 현장에서 들리는 성령의 탄식
권위주의 내세운 목사에 굴종하는 교인들…병든 교회에 당당히 외치자


 
입력 : 2006년 12월 06일 (수) 21:30:51 / 최종편집 : 2006년 12월 07일 (목) 12:59:21 [조회수 : 3024]신흥식

  
 
 ▲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처장 신흥식 장로는 교회 분쟁을 상담하러온 교인들을 만나면서 한국교회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2년여 동안 교회 상담을 해오면서 ‘교회 문제 상담,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이제는 항상 나 자신부터 교회생활을 흠이 없게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먼저 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것이다’ 하고 훈계하는 식으로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데 무엇인가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겪어야 하는 실망과 고통과 슬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느끼고(체휼하고) 고뇌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함께 몸부림치는 것이 상담의 요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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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woo | 2006/12/08 23:42 | Healthy Church | 트랙백 | 덧글(0)





허투루 주기도문 외지 말라

허투루 주기도문 외지 말라
최윤규의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이에게
 

입력 : 2006년 11월 28일 (화) 21:30:05 / 최종편집 : 2006년 11월 29일 (수) 02:11:12 [조회수 : 3032]나신하 ( newsnjoy )


'하늘에 계신' 하지 말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여' 하지 말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지 말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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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woo | 2006/12/04 21:07 | Healthy Church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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